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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매출 65억 프랜차이즈 대표의 파산 극복기

여덟 번째 이야기
오성진 사장님


유명 프랜차이즈 본사에 입사

다양한 사업 경험을 쌓고

현재는 꼬막 전문 프랜차이즈 점주인

오성진 사장님의 이야기 들어볼까요?


4개의 프랜차이즈 브랜드 운영,

3개의 개인 브랜드 런칭까지


연쇄 창업가로 성공한 오성진 사장님은

연매출 65억을 벌며 성공 가도를 달리다

코로나 19로 파산을 겪었는데요.


간절한 노력으로 다시

가게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는

그를 보며 실패로부터 성공을

이끌어내는 법을 배울 수 있어요!



중간본문이미지


오성진 사장님의 파산 극복기



✍️  저는 성공했고, 망한 사장입니다

안녕하세요. 꼬막 전문 프랜차이즈 점주 오성진입니다. 우연히 프랜차이즈 본사에 입사해 사업에 꿈을 꾸게 되고, 현재는 직접 프랜차이즈를 운영 중이에요. 다른 사장님들도 리스크가 적다는 장점으로 저처럼 프랜차이즈 창업을 선택하는데요. 매출이 잘나올 때는, 연 매출 65억을 벌어들이며 성공을 맛보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시절이 일장춘몽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코로나 19를 맞으며 하나의 매장을 제외하고 다 정리한 뒤 파산 신청을 했거든요. 프랜차이즈가 완벽한 해답은 아니에요. 본인의 헌신적인 노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프랜차이즈 선택에 고려할 것들, 그리고 제가 파산을 겪고 다시 일어서기까지의 노력들을 하나씩 알려드릴게요.  



✍️ 프랜차이즈 본사 직원, 프랜차이즈 사장님이 되다

20대 시절, 대한민국에 프랜차이즈라는 개념이 정착하지 않았던 시기였는데요. 아는 형님이 프랜차이즈 회사에 다녀볼 생각이 없냐, 추후 프랜차이즈가 성행할 것이라는 이야기에 마음을 뺏겨 국내 유명한 프랜차이즈 회사에 입사하게 됐어요. 이 회사에서 제 사업 인생이 시작되었죠.


죽으로 유명한 프랜차이즈 본사에 입사하자마자 인천공항에 있는 직영점으로 파견돼 매출을 올리라는 미션을 받았어요. 매출상승방안을 고민하다 인천공항에 상주직원만 10,000명이 된다는 걸 알았어요. 공항에 잠시 머무는 여행객이 아닌 상주직원을 영업해보자고 다짐했죠. 인천공항 항공사 총무담당자를 찾아가 제안을 했어요.  


“항공사 직원 분들이 직원식당이 지겨워서 우리 매장에 자주 오시는데, 자기돈 주고 식사를 하세요. 직원식당 식권을 저희 매장에서도 쓰게 해주세요.”라고 했어요. 총무담당자는 직원의 복지에 무지 신경쓰는 터라 바로 승낙해줬죠. 그렇게 모든 항공사 사무실을 찾아가 8개 항공사의 식권계약을 따냈고 매출이 30%이상 상승했어요.  


회사에서도 난리가 났어요. 이익이 나지 않아 허덕이던 매장을 살렸으니 말이죠. 본사 사무실로 복귀해 직영팀 팀장까지 맡게되었어요. 그 후 새로운 브랜드 런칭까지 맡았고, 해당 브랜드는 현재 400개 이상 가맹점을 유지할 정도로 성장했어요. 이 경험이 프랜차이즈 생태계를 이해하도록 도와주었지만, 이 시기에 자신감과 자만이 제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칠성포차칠성포차 간판(출처 : 칠성포차 공식 홈페이지)


자신감이 생기자 제 사업을 해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어 '잘 만들어 놓은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찾기 시작했어요. ‘잘 만들어진 브랜드를 보는 눈’은 전 직장에서 많이 보고 듣고 교육받은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래서 한참 포차가 유행할 때 포차 프랜차이즈를 골라 친구와 동업을 시작했어요. 전국매장평가 4년 연속 최우수매장으로 선정되기도 했지만 새벽 5시에 마감하고 집으로 돌아와 아침 7시에 자고, 다시 오후 3시에 출근하는 삶을 5년 동안 했더니 몸이 많이 망가져버렸죠.



✍️ 연 매출 65억 신화를 쓰다


꼬막


이제 저녁이 아닌 낮에 운영할 수 있는 가게를 하고 싶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친한 후배가 떡볶이집을 오픈해 찾아갔는데, 후배 매장보다 눈을 사로잡는 상황을 목격했어요. 후배 매장 옆으로 50m넘는 줄이 있길래 다가가봤죠. 꼬막 요리 전문점이었어요. 궁금한 건 못참는 성격이라 1시간 기다려 꼬막비빔밥을 먹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맛있는 거에요. 친구에게 물어보니 20평 매장에서 하루 500만 원 매출을 올린다고 했어요.  


‘뭐라고?! 밤새워 죽어라 일해도 250만 원 매출인데, 밥장사 하면서 하루 500만 원?’  


그때부터 그 브랜드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대출도 찾아보았죠. 운영 중인 포차의 매출 덕에 은행에서 1억 원 정도 대출이 가능했어요. 점포를 알아보다 도봉구 대로변에 45평 공실 하나가 월세 800만 원으로 나왔길래 계약해버렸어요. 당시엔 고민도 안했어요. 하루 500만원 이상 팔면 충분히 낼 수 있는 임대료라고 생각했거든요.  


오픈 날, 순수 홀매출만 800만 원


상상할 수 없는 매출이었죠. 동네 지역 상권이기에 한번 안 좋게 소문나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서비스에 최선을 다했어요. 그러다 저희 매장에서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에 가맹점이 출점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거리를 재보니 본사가 정한 거리에 딱 걸쳐 있어 막을 수도 없었죠. 차라리 먼저 선점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부랴부랴 은행을 찾아가 대출을 알아봤어요. 월매출이 2억 가까이 되니 은행에서 또 대출이 아주 쉽게 나왔어요. 그래서 바로 동업하는 친구와 함께 똑같은 매장을 또 내었어요.


오픈 날, 매출 800만 원


또 터진 거에요. 이러다보니 욕심이 생겨 서울경기 북부지역에 있는 점포 자리를 찾으러 다녔어요. 이때부턴 임대료, 조건을 보지도 않고 그냥 계약했어요. (상권 분석없이 브랜드의 깊이도 알지 못한 채 무작정 창업한 게 실패의 원인이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죠) 그러다보니 연 매출이 총 65억이 넘어갔어요.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고 제 능력이 아닌 남의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제가 잘하는줄 착각하기 시작했어요.



✍️ 성공의 바로 옆자리에 있던 실패

점점 시간이 지나 꼬막 전문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너무 가까운 곳에 과다출점해 결국 꼬막은 별미가 아닌 어디서든지 먹을 수 있는 동네식당이 되어갔어요. 매출도 30% 하락했죠. 타 가맹점이 50%씩 하락하고 있던 데 비하면 그래도 잘 유지해나가고 있었는데요. 하지만 일생일대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어요.  


코로나


코로나 첫 해, TV에서 밖에 나가지말라는 뉴스가 특집으로 하루종일 나왔어요. 매출이 70%까지 하락해 한달 총 5천만 원씩 적자가 나기 시작했어요. 코로나가 금방 끝나겠지란 생각으로 40명이나 되는 현장 직원들도 안고가던 상황이었어요. 지금처럼 안좋은 상황에 직원을 내보내면 이분들은 어떻게 생활을 유지해나갈까라는 걱정에 한 명도 해고를 하지 않았어요. 그러다보니 적자폭은 계속 커져나가는 악순환이었죠.  


은행에서 5천만 원 대출을 받으면 한달 버티는 정도였으니 한달한달이 피 말리는 듯한 날들을 살았어요. 잠이 오지 않았고, 눈을 뜨면 돈을 빌리러 다녀야 했어요. 이전에는 반갑게 뛰어나오시던 은행 지점장님도 이제는 찾아가면 부담스러워하는 얼굴을 숨기지 못하셨어요. 다음달은 어떻게 버틸까 하루 종일 고민만 하고 은행만 찾아다니는 것이 일상이 되었죠.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그것을 헤쳐가기 위한 노력과 고민해야 하는데 저는 원인 파악도 제대로 못한 채로 당장의 어려움을 막기에만 급급했어요. 저는 다시 망한 사장이 되었어요.    


이제와 말하지만 어려움을 이겨내는지, 좌절하는지. 성공과 실패는 결국 마인드의 한끗차이였어요. 



다음 편 <프랜차이즈 점주로 똑똑하게 살아남기>은 다음주 목요일(3/9)에 발행됩니다. 


오성진 사장님의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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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만난 외식업 사람 소개

오성진 사장님은요.
꼬막 전문 프랜차이즈를 운영 중이에요.
노보텔 앰버서더에 입사에 호텔 서비스를 배우고,
롯데 푸드스타(TGI FRIDAYS) 등
유명 프랜차이즈 업계 경력을 쌓아
놀라운 맛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장님이 되었어요.
코로나로 파산을 겪고
다시 새로운 출발을 진행 중인 그는
성공보다 값진 성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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